목회자코너

492 윌체어를 타고 달리는 인생 후반전


                                  “윌체어를 타고 달리는 인생 후반전

 

70년대 국가대표 축구팀의 간판 수비수로 그라운드를 주름잡던 황재만(53)씨가 '휠체어 럭비의 전도사'가 되었다. 인생의 황금기인 30대 후반, 척수염 판정을 받고 휠체어에 주저앉은 그가 이제는 ‘한국 휠체어 럭비협회’ 준비위원장으로 '인생의 후반전'을 불태우고 있다. 그는 고려대를 나와 청소년축구대표를 거쳐 대학 2학년인 72년 태극마크를 단 당대의 '철벽 수비수'였고, 문전까지 연결되는 롱 드로잉으로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런데 ‘잘 나가던’ 축구선수가 갑자기 장애인이 되고 말한다. "1976년 12월 4일 도쿄에서 열린 한․일전에서 헤딩 결승골을 넣어 2대1로 이겼을 때,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북한과 공동 우승할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후 할렐루야 축구단을 이끌고 중남미, 동남아, 러시아까지 누비며 활발한 선교활동을 벌이던 그에게 병마의 그림자가 찾아온 것은 86년이었다. "다리가 불편했지만 선수 때 다친 후유증이라고 생각했죠. 근데 몸이 계속 안 좋았어요. 2년 뒤 척수염 판정을 받았고 90년 무렵 완전히 휠체어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선수시절 172㎝, 72㎏이던 탄탄했던 그는 45㎏까지 떨어졌다. "나는 다시 걸을 수 있다고 믿었어요. 그래서 아내가 휠체어를 구입하겠는 것도 말렸죠. 하지만 결국 현실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신앙과 아내의 헌신적인 도움이 없었으면 삶을 포기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98년 총감독을 맡았던 할렐루야 축구단이 해체되며 축구계를 떠난 황씨는 몇년전 휠체어 럭비를 접하며 새 희망을 찾았다."매일 집에서 천장만 보고 지내던 경추마비 장애인들에게 휠체어 럭비는 삶의 희망입니다. 보세요. 저 격렬한 움직임과 생명력을. 삶을 포기하려 했던 장애인들이 홀로 서고 있습니다. 아름답지 않습니까?" 현재 휠체어 럭비가 보급된 나라는 30여 개국이며, 2000년 시드니 장애인 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첫 걸음을 내디딘 한국 휠체어 럭비의 가장 어려운 것은 장비 문제다. 경기용 휠체어 1대의 가격이 무려 600만 원이다. 황씨는 "럭비용 휠체어 100대만 지원받을 수 있다면 다음 올림픽 정상에 태극기를 휘날리겠다"고 말한다. 불행한 일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데, 왜 이런 일이 나에게 닥쳤는가 생각하면 할수록 그 원인을 찾을수 없다. 한탄하며 삶을 포기하기 쉽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새로운 소망으로 최선을 다할수도 있다. 황재만씨가 불행을 이길수 있었던 비결은 학문이나 지식이나 육체적인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믿음이었다. 팬데믹의 어려움도 믿음으로 승리합시다.

      한무리 목양실에서   박목사 드림  (492호, 5/23/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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